바나나보트

rss

skin by 이글루스




두산 베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평생을 바쳐 너희를 사랑할 것임을 나 스스로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믿고 있어서 더욱 화가 난다. 너희를 끝까지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화가 난다.

나는 내가 올해에도 이렇게 울게 될 줄 몰랐다. 악몽이라고 생각했다. 김동주가 OB에 입단한 이후로 이렇게까지 김동주에게 배신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그저 악몽같았다.

기어코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노경은,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의 가을야구는 일요일에 이미 끝났다. 오늘은 그저 미진하게 남은 잔재들을 한데 넣고 불사르는 과정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흐르는 눈물을 차마 멈출수도 없어 그저 이렇게 울고 또 울 뿐이다.

가을야구는 끝났지만, 나의 야구는 도대체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by 멸치 | 2009/10/15 01:14 | 사랑해야 하는 곰들 | 트랙백 | 덧글(0)


2009년 10월 10일


횡으로 가로지르는 길고 얇은 전선줄 위에 서 있다.
내 손에 들린 장대 끝에는 수박 같은 머리통들이 줄줄이 엮여있지만 나는 휘청거리지도 않는다.
아마도 이미, 모두 끝나고 죽었을 것이다.

by 멸치 | 2009/10/10 10:31 | 가출 | 트랙백 | 덧글(0)


준플레이오프 1차전 패배, 상념 하나.

작 년 포스트시즌이 끝나던 날, 코리안시리즈의 패배 때문이 아니라 두번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던 이번 시즌의 개막일을 그리워하는 것 뿐이라며 몰래 울던 기억이 벌써 까마득한 옛날의 일처럼 희뿌옇고, 혹은 아주 가까운 어젯밤의 꿈처럼 선명하다. 아침에 일어나자 의외로 공기가 선선해서 놀랐고, 가을임을 깨달음과 동시에 차분히 가라앉는 마음에 그저, 승패를 초월해서, V4나 우승이라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지극히 감사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여자아이. 누구나가 그렇듯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현재에 힘들어하고 과거에 마음저려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여자아이지만 단 한번 뜨겁게 사랑했던 첫사랑의 추억, 혼자 밟아 다녀온 먼 곳으로의 여행 기억처럼 훗날 내가 내 인생을 돌아보는 그 어느 때에 너희들이 나의 열정으로 기억될 것임이 감사하고 고마워서 나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 한참을 앉아 그렇게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 하나에 울고 웃고, 입버릇처럼 나에겐 유희이고 오락이지만 너희에겐 인생- 이라 말하면서도 승과 패 하나에 하루하루 희비가 오락가락거리던 반년 동안의 날들이 쏜살같이 지나 여기까지 날아왔다. 항상 마지막 날이 가까워 올 수록 이번 일년보다 내년을 더 기대해버리는 것은 좌절하고 싶어하지 않는 돡내나는 나의 근성이지만 이번 시즌은 어쩐지 조금 다르게 많이 특별하다. 내년엔 더 잘할거야, 올해를 잊고 내년을 먼저 바라보기엔, 올해가 너무 고통스럽고 아름다웠던 까닭이겠지. 너희에겐 많은 일이 있었고, 아주 여러가지 의미로 드라마틱했으며,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 덕분에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섞고, 더없이 편안한 인연들을 만났다.

 야구를 봐왔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시간들 중에서도 올해처럼 특별한 해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내년이 더욱 특별해지길, 내후년이 더욱 아름다워지기를 기도해본다. 뜨겁게 내리쬐는 한여름의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새까맣게 탄 얼굴을 가리며 웃던 날들이 내년에도 반짝거리길 바란다. 언제나 나의 자랑이고 자존심이었던 너희가 내년에도 나를 더욱 열정적이고 뜨겁게 만들어주길 바란다.

 

 사랑한다, 베어스.







 내가 이렇게 쓴 것이 바로 어제 오후 2시 50분경. 조기퇴근 허락을 받고 이제나 저제나 언제 퇴근할까 시간만 기다리며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던 때였다. 그리고 나는 단순한 패배를 넘어 하나의 쓴맛을 입에 물고 집에 돌아왔다. 소주와 맥주를 밥삼아 반찬삼아 잠실야구장 앞에 주저앉아 목을 놓게 만든 것은 만루찬스를 두번이나 놓친 타선 때문도, 올라오는 족족 털리고 내려가던 투수진 때문도, 일반적으로라면 그 어떤 감독도 하지 않을 대타기용을 보여준 김경문 때문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이제 내가 인정해야 할 시기가 왔음을 자각하고 그에 몹시도 서글퍼졌던 것이다.

 내가 사랑하던 형태의 두산야구는 이제 없음을.
 다른 형태로 변화해가는 두산야구에 내가 적응해야함을.

 소위 말하는 올드비로서의 미망을 접고, 다르게 야구하는 이들을 믿어야 함을.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마시다 만 술은 들척지근하고, 나는 몹시도 서글플 따름이다.

by 멸치 | 2009/09/30 01:49 | 사랑해야 하는 곰들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