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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이 너무나 많아서


그래서 오히려 할말이 없다.

되돌릴 수 없어 더욱.

by 멸치 | 2011/05/26 11:48 | 가출 | 트랙백 | 덧글(0)


에이스의 부활, 김선우.


이번 주말을 끼고 있었던 다사다난했던 두산 베어스의 정점을 희망으로 끝낼 수 있게 해준 에이스, 
연패를 끊어준 김선우의 완봉승에 그저 감사하며
오늘은 말을 줄인다.

할 수 있는 말이 그저 감사하다, 고맙다는 말뿐이기에.

by 멸치 | 2011/05/08 20:47 | 사랑해야 하는 곰들 | 트랙백 | 덧글(0)


김경문의 한계, 김경문 리더쉽에 대한 소고.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었다. 나는 결국 어린이날 경기에 가지 않았다. 티켓을 모두 양도해버리고 야구를 보지 않았다. 이는 내게 있어서 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는 점을 미리 언급할 필요가 있다. 133경기,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가 있다. 단순히 질 것 같기 때문에, 지고 있기 때문에, 졌기 때문에 야구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내 상식 밖의 일이다. 그랬다면 꼴비베어스 때 야구를 접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린이날, 아니 최근 2주일 동안 줄곧 두산의 야구를 보지 않았다. 이런 야구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뚝심 야구의 실종, 지나치게 길었던 과도기

베어스 팬들에게 베어스의 야구란? 수많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모두 입을 모아 말할 수 있는 팀컬러가 있었다. 뚝심의 야구다. 베어스의 암흑기었던 꼴비베어스 시절에도 9회 말 2아웃 '어쩌면, 혹시나'하는 기대를 할 수 있었다. 사정없이 깨지고 박살이 나도 '야구를 못하는 우리 팀에 대한 분노'에 더해 '그럼에도 야구가 즐거운' 재미는 느낄 수 있었다. 꼴비 꼴비 놀림당해도 욱하고 다시 야구를 보게 되는 그런 맛이 있었다. 항상 하위권에 있으면서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당장이라도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있었다. 곰의 뚝심이었고, 기회만 생기면 아프게 한방 물어버리는 곰의 집중력이 있었다.

김인식 사단의 말년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처럼 우울했다. '노인정 베어스'라는 말이 웃을 수 없는 농담처럼 회자되었고 쓸만한 세대교체 없이 노화한 선수단은 그야말로 호흡기를 떼기 일보 직전처럼 보였다. 어떤 베어스의 팬들은 김인식 이후 새로오게 될 감독에 대한 이름을 듣고 2001년 우승의 기억만을 간직한 채 당분간 야구에서 멀어질 준비를 했던 것도 같다. 그만큼 김경문이란 이름은 낯설었다. 원년 우승멤버였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이라는 타이틀에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어떠한 자격조건도 갖추지 못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신임감독의 이름 전에 언급되던 것이 실로 쟁쟁했던 이름이라는 점 역시 김경문을 한없이 초라하게 보이게 한 또다른 이유였을 것이다. 나 역시 당연히, 새로운 감독을 선출하기 위해 1년 땜빵으로 앉혀놓을 사람 정도로 김경문을 생각했다. 그러나 김경문은 부임 첫 해, 쇠락의 길을 걸으며 다시 한번 베어스의 두번째 암흑기로 들어서고 있었을지 모르는 두산을 포스트 시즌에 올려놓았다. 정규시즌 3위, 기아와의 치열했던 준플레이오프에서 거둔 플레이오프 진출의 쾌거. 삼성에 막혀 1승 3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좌절했지만 호흡기를 뗄 준비를 하고 있던 베어스 팬들에게 2004 시즌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심장마사지로 죽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콜록거리며 일어난 것이다.

김경문 감독 체제의 두산은 그 후로 꾸준한 행보를 보였다. 주포인 김동주가 부상으로 인해 거의 뛰지 못했던 2006년 두점 베어스 시절을 제외한다면 부임 이후 출석도장 찍듯이 포스트 시즌에 한자리를 맡아놓고 가을야구 밥상을 차렸다. 포기했던 순간 마음에 불을 지른 김경문식 두산 야구에 대한 평가가 정점을 찍은 것은 아마도 2007-2008년일 것이다. 두산팬이라면 누구나 뼈아플 수밖에 없는 SK와의 한국시리즈 이후, 김경문의 아이들 1세대 격인 김현수가 '김구리엘'이 되버린 이후 그 뼈아픈 패배는 적의의 레이더를 라이벌리즘으로 승화시켜 SK와의 고착적인 경쟁관계를 완성시키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김경문의 두산 역시 이 순간 고착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2007, 2008년의 한국시리즈에서 나는 패배보다 더 진한 입맛으로 남는 무언가를 맛보고 느꼈다. 이 기묘한 미각의 퇴화는 실로 독특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국시리즈 패배의 현장을 지켜보며 엉엉 소리내어 울던 나는 짭짤한 눈물맛보다 더 밍숭맹숭했던 그 이상한 패배가 퇴화시킨 미각의 이유를 2000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동수 트리오의 '미친 것만 같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다이너스티 현대에 밀려, 박빙의 승부 끝에 퀸란에게 연타석 홈런을 얻어맞고 주저앉아야만했던 그 7차전의 기억은 패배임에도 불구하고 입안에서 톡톡 튀는 엄청나게 짜릿한 맛을 자랑했었다. 현대와 박빙으로 붙었던 그 2000년의 기억은 2001년 기어코 우승으로 이어지며 베어스의 끝내주는 '뚝심'을 고스란히 보여준 잊을 수 없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뒷심으로 밀어붙이며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이 물어뜯는 곰의 웅비가 살아있던 그 시절, 베어스의 자존심은 누구도 만만히 보지 못할 바로 그 뚝심이었다. 

과도기라는 것은 항상 그렇다. 지나고 나면 짧게도 길게도 느껴지지만 겪고 있을 때는 알기가 어렵다. 2009년, SK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또다시 허망하게 무너진 두산을 보며 나는 우리가 과도기의 한복판에 서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희미해진 뚝심의 자취 뒤에 뭉뚱그려진 새로운 무언가,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무언가, 흡사 '오지 않는 전설의 1군'처럼 올 듯 말 듯 오지 않는 아주 밍숭맹숭하고 심심한 무언가로 점철된 베어스의 과도기를 말이다.


베어스 위기론-무관의 7년, 약인가 독인가

1년째는 마냥 기쁨이었다.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며 김경문 감독 나름의 '뚝심'은 지탄과 추종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베어스는 과도기의 정점에 서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혹자는 우수한 성적이 꾸준히 지속되니 좋은 것이 아닌가 되묻고 혹자는 그 좋은 성적으로도 번번히 우승하지 못하니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 반문한다. 무엇이 정답일까. 정답은 아마도 류현진 전설의 명대사처럼, "둘 다"일 것이다. 

베어스팬들이 꼴찌의 설움을 잊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수년간 지속된 리그 상위권 유지라는 가시적인 성적표와 젊은 피의 수혈로 인한 탄탄한 야수층은 두산을 항상 강한 팀으로 보이게 한다. 언제나 입안에 가시처럼 쿡쿡 팀을 찌르는 투수, 특히 선발투수의 부재가 아니라면 진즉에 우승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은다. 두산은 모두가 인정하는 강한 팀이 되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두산의 강함이란 실로 애매한 차원의 것이다. 모두가 SK를 이야기할 때 느껴지는 그 지독할 정도의 승리공식도, 롯데의 폭풍같은 타력폭발로 인한 화끈함도, 서늘하게 날이 갈려진 삼성이나 기아의 화려한 선발야구에서 나오는 강함도 아니다. 두산의 강함은 객관적인 지표로 판단되는 것 이상의, 혹은 이하의 강함이다. 누구나 두산을 강하다고 말하지만 무엇이 강한가 되짚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기 마련이다. 항상 한끗발이 부족한 아쉬움을 품고 있는 두산의 강함. 잘못 맞춘 태엽처럼 어그러져서 돌아가는 두산의 강함은 베어스팬들에게 꼴찌의 설움과는 다른 2% 모자란 2등의 설움을 지독하게 맛보이고 있다. 승자도 패자도 아닌 어중간한 강자의 포지션은 하루하루의 패배에 대해 분노하고 규탄할 수 있는 포지션도 앗아가고 두산의 '약함'을 거론조차 못할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관식을 치르지 못한 인정받지 못한 왕은 위험하되 우스운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프로야구 원년 우승으로 시작한 베어스의 역사 속에서 10년의 무관이 가지는 의미는 다른 팬들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를 수 있다. 단순히 오랫동안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턱밑에 다가왔다 이내 멀어지고 마는 해갈에 대한 갈망이 모이고 또 모여 담수처럼 고이면 괴로움과 갈증은 두배 세배로 증폭되기 마련이다. 김경문 체제에서 7년 무관의 설움이 가지는 의미란 그런 것이다. 그 아무리 다른 이들이 '배부른 투정'이니 '있는 자의 헛소리'라고 치부한다하더라도 당사자들에겐 그만큼의 괴로움이 없는 것이다. 꾸준한 강함 속에 반복되는 무관의 역사가 약보다는 독에 가까운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다. 다른 누구보다도 선수단 스스로가 깨닫고 있을 독 말이다.

SK, 라이벌을 넘어서 망령으로.

이야기를 잠깐 되돌리자면, 09년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후, 그리고 10년 정규시즌을 3위로 마감한 후 김경문 체제에 대해 몰아쳤던 뜨거운 비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SK만 만나면 유난히 약해지는 두산, 공한증에 시달리는 중국 축구처럼 어느 순간 기정사실화되어버린 두산의 SK공포증은 무관의 역사가 남긴 또다른 독이 되고 말았다. 우승을 한발 앞으로 남겨놓고 어이없이 주저앉은 07년, 우리는 SK전의 그 패배가 하나의 트라우마로 두산 베어스를 깊이 가로지를 것임을 예상하지 못했다. 김현수가 2땅을 치고 탄식하며 달리던 그 모습과 그 안타까움이 그 다음해에는 승리에 대한 기폭제가 되어 우리를 반드시 우승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08년에 그 무엇이 달라졌던가. 반복된 역사 속에서 트라우마는 채 아물지 못한 깊은 상처처럼 남아 두산을 괴롭혔다. 그리고 SK는, 그 무수한 매스미디어의 미사여구와 포장을 뛰어넘어 라이벌 이상의 존재로 두산에 달라붙었다. 

두산에게 있어서 SK의 존재는 망령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아니, 김경문에게 있어서 망령일 수도 있다. 집권 7년, 안정된 순항을 하고 있는 김경문호가 흔들리는 순간은 항상 SK 앞에서였다. 감독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리더쉽의 근원은 흔들리지 않는 중심으로서의 역할이다. 헤드가 흔들리면 모두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언제나 SK를 만나면 '이제는 그러한 선택이 놀랍지 않을 정도로' 항상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SK를 적대적 라이벌로 여기며 타도의 대상으로 꿈꾸던 팬들조차 이제는 지쳐버릴 정도로 반복되는 김경문 감독의 對SK 무리수는 그 목록을 적기만 해도 한권의 책이 나올 정도다. 가장 최근의 무리수로는 1선발 더스틴 니퍼트를 SK와의 3연전 첫경기에 투입하도록 로테이션을 조정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SK와의 올 시즌 첫 3연전을 앞두고 양팀 초유의 관심사는 역시 선발 로테이션이었다. 그 중에서도 에이스 김광현과 니퍼트의 선발등판일자에 맞춰져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을, 김경문 감독은 당연히도 니퍼트를 지목했다. 그러나 니퍼트의 선발등판은 께름칙한 요소가 있었다. 정해진 로테이션의 순서를 거르고 무려 열흘만에 결정된 선발등판이기 때문이었다. 팬들은 혼란스러워했고, 담당기자들의 트윗과 그 후에 제대로 공개된 인터뷰에서 이유를 밝힌 김경문 감독의 코멘트는 실망스럽다못해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SK를 잡기 위해 니퍼트를 투입한다. 모든 장치적 발언을 제거하고 요점을 요약하면 결국 이것이다. 07년 이후로 꾸준히 반복되어온 그 패턴, SK를 잡기 위해 항상 초강수를 두고 무리수를 두는 그 결정. 팬들은 니퍼트의 선발등판 결정에서 10년 히메네스의 계투 등판과 그가 맞은 쓰리런 홈런의 흔적을 보았다.

(물론, 니퍼트의 선발등판간격 조정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점을 고려하더라도 굳이 SK전에 니퍼트를 냈어야 할 이유는 없다. 2위와 1위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중요한 터닝포인트라고 하고 싶다면, 올 시즌 남은 경기의 수를 다시 한번 계산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김경문 야구를 꾸준히 봐왔던 사람이라면 그가 SK를 잡기 위해 호기롭게 던진 초강수들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한 판례를 다시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믿음의 야구, 저울대의 끝이 겨누는 것은 누구인가

지난 4월 26일, 스포츠월드를 통해 공개된 김경문 감독의 인터뷰에서 그는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팀을 운영해나간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 바 있다.

“내가 어린애들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나도 34세까지 선수였고 30대 선수들이 후배들이 못 따라오는 상황이라면 쓰지 않을 일이 없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는 준다. 베테랑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베스트 멤버만 바라보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팀 전체가 가라앉는다. 그래서 주전을 받쳐줄 선수를 준비시키려 노력했다. 이름을 떠나 동등한 시각으로 넓게 선수를 봤고, 당장 올해가 아니라도 내년에 가능성이 있다면 과감하게 기용했다.”

두산은 화수분 야구, 도깨비 팀으로 통한다. 06년 김동주의 잦은 부상으로 인해 두점 베어스를 면치 못했던 그 때 현대에서 방출되어 야구를 접을까 고민하던 선수가 절친한 친구 손시헌의 추천으로 입단, 신고선수 출신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종욱은 두산의 뚝심야구, 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떠올랐고 2루 베이스와 함께 팬들의 마음을 훔쳤다. 그를 추천한 손시헌 역시 신고선수 신화를 이루어낸 '진흙 속의 진주'였다(특히 두산이 김민호의 은퇴 이후 유격수 후계자를 확보하기 위해 기울였던 숱한 노력을 기억한다면 손시헌의 발굴은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성과로 기록될 것이다). 숱한 비난과 '양아들'이라는 비아냥 섞인 칭호에도 불구하고 뚝심으로 밀어붙여 결국 대한민국 대표타자로 성장한 '기계' 김현수도, 작은 몸집 안에 화려한 스타성을 숨기고 있던 '차세대 테이블세터' 정수빈도 김경문 체제가 키워낸 화수분 야구의 대표선수다. 2010년, 경찰청 제대 후 안방을 차지한 중고신인 양의지마저 20홈런을 터뜨리며 신인왕에 이름을 올리자 이제 두산은 매년 선수 하나쯤은 찍어낼 수 있는 '화수분 공장'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냐는 농담섞인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성공 뒤에는 실패가 있고, 모든 스포트라이트의 이면에는 땀과 눈물과 좌절이 있다. 성공한 케이스가 있으면 실패한 케이스가 있는 것은 당연한 법, 고영민과 이성열의 이름은 김경문 체제가 구축한 화수분 야구가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국가대표 2익수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베이징의 외계인 고영민, 그리고 타고난 힘과 신체조건으로 2010년 24홈런을 쳐내며 단숨에 만년 유망주의 타이틀을 떼버리는가 싶었던 이성열. 화수분 야구 시스템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김경문식 믿음의 야구가 부딪힌 최초이자 최대의 고난은 바로 이 둘일 것이다.

고영민의 뒤에는 오재원이, 이성열의 뒤에는 임재철이 있었다. 누구보다 노력하는 선수들로 팬들의 아쉬움을 한몸에 받았던 선수들이다. 특히 임재철의 경우, 철저한 자기관리와 뛰어난 선구안, 악착같이 투수를 괴롭히는 스타일로 09년 이미 그 실력을 검증받았던 선수였다. 그러나 김경문의 믿음은 임재철을 겨누지 않았다. 검증된 실력의 서른 세살 우익수와 포텐셜한 스물 일곱 포수 출신 지명타자. 김경문식 '독고다이' 믿음은 이성열을 24홈런타자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성장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끝없이 제기되어온 것 역시 사실이다. 만년 유망주, 드디어 포텐 터지나. 김경문의 믿음이 키워낸 뚝심의 홈런타자 이성열, 수많은 헤드카피 속에서도 그에 대한 불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김경문 감독은 과연 알고 있었을까, 혹은 알고도 모르는척 했던 것일까.

고영민은 조금 더 특별한 케이스다. 감독의 믿음과 베이징의 추억이 고영민을 단순한 선수 이상으로 심벌화했다. 심벌라이제이션된 고영민은 두산 야구, 정확히는 김경문 야구의 독보적인 아이콘으로 미화되고 재생산되며 말 그대로 2루를 '지배'하고 있다. 원래 그의 실력이 그만큼 뛰어난가 아닌가를 떠나, 두산의 2루에 서게 되는 선수들은 아주 흔한 타구 하나에도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땅히 안타가 되어야 마땅할 공이라도 팬들의 가혹한 잣대는 "고영민이라면 잡을 수 있었을텐데"라는 탄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농담처럼 "고영민이 살아야 두산이 우승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상황이다. 믿음의 야구는 결코 공평한 저울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김경문 감독의 말처럼, 30대 선수들이 후배들이 못 따라오는 상황이라면 쓰지 않을 일이 없다면 팀내 체력테스트에서 20대 후배들을 제치고 월등한 기량을 선보인 임재철이 경기에 뛰지 못할 이유가 없고, 이름을 떠나 동등한 시각으로 넓게 선수를 봤다면 타율 3할을 기록하고 있던 오재원 대신 고영민이 굳이 선발에 들어야 했을 이유가 없다.


하마평이 좋으면 끝이 좋지 않은 법

올 시즌 베어스는 시즌 개막 전부터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최강의 우승후보로 손꼽혔다. 이혜천의 컴백과 전년도까지 메이저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마운드에 올랐던 거물급 용병 더스틴 니퍼트의 영입, 한층 막강해진 화수분 야구가 이루어낸 짜임새 있는 타선, 김동주의 FA로이드,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승에 목마른 팀의 뜨거운 열의까지. 그 누구도 두산 베어스를 우승후보로 꼽는데 일말의 주저도 없었다. 그러나 하마평이 좋으면 끝이 좋지 않다고 했던가. 우승 사정권에서 번번히 주저앉은 이제까지의 베어스가 겪어왔던 문제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우승에 대한 설레발을 칠 수 없었던 것은 꼴비베어스를 기억하는 팬뿐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상황, 꾸준한 강자이되 압도적 패자(覇者)는 되지 못하는 두산의 상황은 어쩌면 시즌 전부터 꾸준히 모두가 품고 있던 불안이 현실화는 아닐까.

두산의 뚝심이 사라졌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일지도 모른다. 노인정 베어스에서 포스트 시즌을 향했던 그 때도, 김동주의 부상으로 인해 두점 베어스라는 수치스러운 이름으로 불렸던 그 때도, 리오스가 떠나고 랜들이 선릉역에서 허리를 다쳐 믿을만했던 용병 원투펀치를 한꺼번에 잃었던 그 때도, 주전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에 부상병동 타이틀을 달았던 그 때도, 두산은 항상 의외의 부분에서 괴력을 발휘하는 팀이었다. 얕보면 얕볼수록 굳건하게 일어서서 도깨비처럼 강해지는 팀, 경기가 끝나는 순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을 때까지도 언제나 역전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 팬들을 두근거리게 하는 팀, 그런 팀이 바로 두산이었다. 베어스의 자부심은 그 뚝심에 있었고, 뚝심은 언제라도 뒤엎을 수 있는 야구라는 스포츠의 근간에 존재하는 힘이었다.

그러나 최근 2주일간, 두산이 지나온 자리에 남은 경기들은 의아함을 넘어선 충격과 공포를 팬들에게 던져주었다. 허탈함일수도 있고, 분노일수도 있고, 당황일수도 있으며 혹은 슬픔일수도 있다. 승패가 존재하는 승부의 세계에서 단순히 1패 1패의 의미만이 두산팬을 절망에 빠뜨리고 감독에 대한 분노를 성토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토록 긴 글은 필요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베어스의 팬으로 지내온 날들 중에서도 가장 뼈아펐던 지난 2주의 대미를 장식한 어제 어린이날의 패배는, 패배보다 더 충격적인 부끄러움을 안겨주었다. 8회초에 8실점을 해서? 옆집 라이벌이라는 LG에게 완패를 당해서? 어린이날 아이들 모아놓고 충격의 패배를 당해서?


변화를 말하는 김경문, 그러나 김경문은 김경문이다.

소신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보편적으로 타자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자신만의 올곧은 신념은 기본적으로 좋은 쪽에 속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타협할 줄 모르는 소신과 신념은 때로 고집과 아집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김경문의 두산은 기나긴 과도기 속에서 2011년 지금 바로 이 순간, 그 고집과 아집의 잔해처럼 흩어질 위기에 처해있다. 어린이날 패배는 이 모든 종류의 위험요소를 고스란히 노출한 경기였다. 

내가 어린이날 경기를 깔끔하게 포기한 것은 지난 2주간의 패배 때문만은 아니었다. 패배 때문이었다면 오히려, "오냐, 어디 이길 때까지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경기장을 찾았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린이날 선발투수 이용찬을 예고한 순간 나는 그야말로 뚝 하고 마음 어딘가에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고무줄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용찬이 음주운전으로 팀에 분란을 몰고왔던 선수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항상 팬을 위한 야구를 주장하던 김경문 스스로의 말에 위배되는 결정을, 올해만큼은 반드시 우승을 해야한다는 절박감에 시달리는 팀의 감독으로써 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역겨웠기 때문이었다.

프로스포츠는 팬과의 밀접한 연결을 기반으로 한다. 그 호불호를 떠나 내가 김경문 감독을 높게 평가하고 있던 부분 역시 바로 그런 점이었다. 김경문 감독은 프로야구가, 또 두산 베어스가 팬을 위해 존재하는 팀임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지더라도 재미있는 야구, 두산만의 야구를 해야함을 꾸준히 강조해왔던 감독이었다. 2010년 롯데 부임설이 돌고 9월의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했던 경기력 속에서 잔뜩 벼려진 날처럼 날카롭던 팬들의 마음을 일순간에 뒤집은 준플레이오프 기적의 리버스 스윕과 플레이오프의 뜨거운 명승부는 김경문 감독이 말해왔던 그 '팬을 위한 야구'의 정점이었다. 우리는 야구에 울고 웃으며 그 순간 '아름다운 패자(敗者)' 두산에 감사했다. 그 때의 우리에겐 2011년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흡사 2000년, 퀸란의 홈런에 눈물을 터뜨리면서도 2001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우리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시작부터 삐그덕거리는 이 팀에서, 김경문이 5월 5일 선발로 이용찬을 예고했다는 것은 그가 말하던 팬서비스 정신에 도통 부합하지 않는 어이없는 결정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이용찬이 그 전날이나 그 후, 평일 경기 언제라도 선발로 나왔다면 이용찬에 대한 그 집착을 이해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이날이었다. 시즌 홈 6경기째 매진이 기록된 날이었다. 벌써 3년째 이어지는 어린이날 잠실대첩의 의미를, 09년 쥐린이날과 10년 돡린이날의 치열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은 바로 그 경기에서 '실험'을 했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투수운용과 부상으로 풀타임 기용이 불가능한 이종욱 대신의 중견수 대체자로 정수빈이 아닌 유재웅을 선택했다(그나마도 정진호가 지난 LG전 2경기에서 보여준 형편없는 경기력이 아니었다면 어린이날도 정진호가 그 자리에 섰을 것이다). 

김경문은 변화하지 않는 사람이다. 뚝심, 신념, 소신, 어떤 말로 설명해도 좋고 고집, 아집, 강박, 어떤 말로 이야기해도 좋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SK를 넘기 위해, 리그 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전면전을 선포한 시점이라면 그가 하는 감독의 말처럼 실패한 부분은 되새기고 보완할 부분을 찾아 승리를 위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경문은, 그런 의미에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김경문 감독에 대한 나의 모든 기대가 부서지고 어그러진 것은 그가 변화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야구팬으로서, 내게는 지론이 있다. 아무리 열을 내고 몰입해서 보더라도 내게는 공놀이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 야구는 인생 그 자체라는 것이다. 내가 억울하다면 그들은 백배 천배 억울할 것이고, 내가 분하다면 그들은 천배 만배 분할 것이다. 내가 기쁘다면, 내가 행복하다면 그들 역시 그 수십만배 그러할 것이다. 나는 이런 마음으로 그들에게 가해지는 칼날을 억눌렀다. 그러나 두산 베어스가, 김경문 감독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차마 내가 말하지 못했던 사실이 있다. 정작 김경문 감독은 읽지도 않을 글을 이토록이나 길게 쓰고 있는 이유가 있다.

두산 베어스의 야구는 내게도 인생이다. 그게 나를 미치고 팔짝뛰게 만든다. 멀뚱하니 서서 삼진을 당하고 신인투수의 공에 풍기질을 하고, 병살을 수도 없이 치고 축 처진 어깨로 쓰리런을 맞고 들어가는 그들의 슬픔 역시 고스란히 우리의 슬픔이다. 승리를 향한 갈망도, 애닳음도, 분노도, 열망도, 우리 모두의 것이다.

김경문이 변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가 변하는데 7년이 더 걸릴 바에야 김경문을 버리길 바란다.


* 선수기용 문제에 관한 첨언.

지금 상황에 있어 임재철의 2군 이탈로 인해 대체자가 없음은 주지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 대체자의 자리에 기용되어야 할 것이 반드시 정진호, 유재웅 뿐인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유재웅은 베테랑이라는 이유가 있지만 정진호의 경우 차라리 김영재나 이현민을 올려볼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이현민의 경우 스프링캠프 유경험자고, 김영재는 2군에서 주전 중견수로 뛰면서 괜찮은 성적을 보이고 있는데 말이다.

by 멸치 | 2011/05/06 14:16 | 사랑해야 하는 곰들 | 트랙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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