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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이기적이다

스포츠는 이기적이다. 승패와 순위가 걸린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스포츠는 이기적이다. 따라서 야구도 이기적이다.
가장 즐겁게 야구를 즐길 수 있을 때는 야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때일 것이다. 모르는 것은 이기적인 것을 배제한다. 혹은 이기적인 것조차 즐겁게 한다. 그 이기는 나와 관계없는 이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구는 대다수의 야구팬들에게 나 자신과 공명하는 이기심을 배양시킨다. 내 팀, 우리 팀 말이다. 응원하는 팀이 있고, 응원하는 선수가 있고, 우리 팀이라 부를 수 있는 팀을 갖게 되는 순간 우리는 야구를 따라, 스포츠의 그 법칙을 따라 이기적이 된다. 종족적 이기심의 발원이다. 그들은 나의 종족적 자부심이 되기 때문이다.
몇가지 일들이 있었다.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스포츠와 야구가 우리에게 배양시킨 이기심의 흔적들을 본다. 그것은 사방에 얼룩덜룩하게 퍼져 지저분하고 더러운 자국을 남겼다. 앞으로도 그 자국들은 더욱 잘게, 더욱 넓게, 더욱 멀리 퍼져 나갈 것이다. 이기심의 자국들은 때로는 언성을 높이는 삿대질이 되고 얼굴을 붉히는 험한 댓거리가 되고 그러다 마침내 기어코 주먹을 들게 하는 용암 같은 분노로 튀어오를 것이다. 우리 팀의 실수도, 잘못도 끌어안는 이기심, 너희 팀의 실수도, 잘못도 용서할 수 없는 이기심, 이기심과 이기심은 매 경기 한순간 한순간 마다 부딪혀 격하게 타오르고 서로를 달굴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이기심이 자꾸 숨으려 든다는 것이다. 다른 몇몇 구기종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체와 신체가 직접적으로 부딪히지 않는 야구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의 신사적 스포츠라는 껍데기를 이상한 부분에서 뒤집어 쓰고 있다. 더구나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 갇혀 여덟 개의 종족으로 서로를 나누고 매일 얼굴을 봐야하는 우리 야구팬들은 그 신사적 스포츠의 팬으로서 자신들이 뱃속에 품은 이기심을 교묘한 가식으로 감추고 가리우며 서로에게 웃는 낯으로 인사를 건넨다. 어제 경기 정말 멋있었어요. 저희가 지기는 했지만 그 투수 공 너무 좋더군요. 별말씀을, 그 팀 타자들 선구안이 장난 아니던데요? 야구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 대화는 격렬한 자극의 스파크 한번에 곧 '훅가고' 말 것임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하는 것이 사실은 이 위악적이고 끔찍할 정도로 깜찍한 이기심의 가면일테지.
나의 종족적 자부심이자 이기심을 위해 가면을 뒤집어쓰고 순한 얼굴로 6시 30분 전까지 앉아있는 것은 하나의 즐거운 기다림이다. 우리는 이 이기심에 그런 이름을 붙인다. 세상에서 가장 열렬하고 뜨거운, 비보상적인 광적 애정을 담아 '팬심'이라고.

우리의 이기는 썩, 나쁘지 않다.

by 멸치 | 2010/04/09 12:40 | 플레이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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